본문 바로가기

home sweet home/book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그리고 에곤 실레의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 이해에 대한 노력

묵클럽을 통해 읽게 된 책이다.

 

 

 

 

절친의 연인이 데이트폭력과 외도가 지나쳐 헤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번을 다시봐도 그 남자의 장점이라곤 큰 키와 다부진 몸, 잘생긴 얼굴이 전부였다. (물론 얼빠들에겐 이게 진짜 전부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쓰레기같은 놈이랑 어떻게 만나왔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건 우리 주변에는 못생긴 쓰레기와 훤칠하고 잘생긴 쓰레기가 공존한다. 

 

우리 역시 우스개소리로 '요조가 잘생기지 않았더라면 삶을 열심히 살았을거에요' 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렇다, 요조 또한 잘생긴 쓰레기로 묘사된다. 인간 실격의 요조는 글의 저자 다자이 오사무와 흡사한 인물이라고 했으니 다자이 오사무도 잘생겼지 않았을까 의심이 된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인상, 모두를 깔보는 눈길을 가지고 있지만 웃음으로 감추고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민음사 책 표지 사진이 뭔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과 닮진 않았을까 궁굼하다. 민음사 문학 시리즈의 표지는 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으니, 어떤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 번 찾아보자.

 

 

민음사 책의 표지 그림은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의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이다.

원본 사진속 인물은 책 표지보다 더 차가워 보인다. 튀어나온 광대와 쿨톤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창백한 낮빛을 보이고 있다. 

 

에곤 실레는 인간의 내면, 솔직한 본질의 모습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라고 한다. 생생하고 관능적인 누드화를 그리며 급진적 표현주의, 성과 죽음에 대한 집착 등의 호칭을 얻었다고 한다. 남녀의 성기, 매춘부, 14살 소녀, 레즈비언 커플, 성직자, 수녀 등 현대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재로 누드화를 그렸으나, 적나라한 묘사와 동시에 전혀 에로틱하지 않은 그림들을 남겼다. 그는 누드를 그리는 것이 아닌 사람의 본질을 관찰하고 예술을 탐구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28세에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약 100여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타인의 내면을 알기가 어렵다고 생각해 자화상을 그리며 스스로를 탐구하는 것을 추구했다고. 인간 실격의 표지인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도 에곤 실레라는 인물의 외형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진실한 내면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에곤 실레의 그림을 표지로 쓴 다른 책이 있다. 장 폴 샤르트르의 <구토>는 실존주의 그 자체를 표현하는 책으로써 '무엇이 우리를 규정하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인간 실격>을 읽으면서 자신과 타인의 실체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요조의 모습속에서 <구토>의 주제가 보였다고 생각한다. 요시코를 불변하는 신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요조는 요시코의 본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을까. 마담은 '술을 마셔도 하느님처럼 착한 아이'라고 요조를 묘사했지만 정말로 요조의 고민과 생각들을 알고자 노력한 적이 있었을까. 

나도 요조의 의식의 흐름을 집대성한 <인간 실격>이라는 책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요조를 '잘생긴 쓰레기'라며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너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을까. 

 

<인간 실격>은 파멸해나가는 인간이 결국 참회하고자 글을 남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메인 키워드를 꼽으라고 한다면 '부끄러움'이나 '속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가 떠오른다. 요조의 머리속을 다 들여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 헤어진 연인, 친구를 내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바투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Never perfect. Perfection goal that changes. Never stops moving. Can chase, cannot catch.

완벽은 없음. 완벽이란 목표는 계속 변함. 멈추지 않음. 따라갈 수 있지만, 붙잡을 수 없음.

 

이처럼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따라갈 수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에 수렴할 수 있는 태도로 나와 너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감히 말해본다.

 

 

 

<인간실격>에 관련되어있는 인물들의 사진을 비슷한 각도로 모아보았다. 분명 냉소적인 눈빛을 가질거라고,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고생을 자처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았던 얼굴들 이었다. 내가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런 고정관념부터 뛰어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오구리 슌(인간실격 영화의 요조 역을 맡았다)을 보면 당장이라도 스즈란고등학교가 떠오르지만 이건 우리 세대에게 주입된 문화적 고정관념이니 너그럽게 넘어가보자.

 

참고 링크

 

에곤 실레 관련 칼럼 1 

에곤 실레 관련 칼럼 2 

에곤 실레 관련 유튜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