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교도관이야?
오랜만에 머리를 식힐 겸 가벼워 보이는 책을 집어들었다. 작년 말에 나온 '왜 하필 교도관이야?'는 현직 교도관(정식 명칭은 교정직 공무원이다)인 장선숙 교감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집어 들게 된 계기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나는 교도관이 어떤 직업인지 알지 못하기에, 내 평생 내 주변에 교도관이 있을 것 같지 않기에 책으로 간접 경험을 해보고자 했다. 심지어 소제목도 '편견을 교정하는 어느 직장인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교도관 역시 평범한 직장인 중 하나라고 말하는 듯 했다.
책 자체는 굉장히 라이트하다. 흡입력 있는 문체보다는 그냥 블로그에 쓴 글 같은 느낌. 박사 공부를 마치신지 얼마 안되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에세이 종류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끊임없이 나오는 학술적 레퍼런스. 교도관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교도관과 수감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내용까지.
다 읽는데는 2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가벼운 책인 것은 맞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소재들은 몇 개가 있었다.
1.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저자는 교도관을 법망에서조차 제외된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챙기는 사람들 처럼 묘사하고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며, 그들의 갱생(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감옥은 악질 수감자들만 가득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으로 보았을 때, N번방의 쓰레기들, 성폭행범들, 묻지마살인범, 사기꾼들이 가는 곳이 교도소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저런 흉악범들에 대해서는 언급하고있지 않다. 분명 저런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닐텐데 그냥 따뜻한 감옥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감동적인 부분들만 인용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여튼저튼 과연 저자는, 그리고 나는 저런 흉악범들 조차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대넓얕 팟캐스트에서 채사장이 말 했듯 나 또한 죄에는 경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중한 죄를 짓는 것은 원인이 사람에게 있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인류에 대한 애정이 가능할까. 아니 난 안될 것 같다. 먼 훗날에는 그정도로 마음이 넓어질 순 있겠다만 지금 당장은 절대 안될것 같다.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한들, 아에 그런 사람들은 이해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2. 책임감으로부터 생겨나는 열정
저자는 자신에게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수감자들을 보며 저들의 사회화(취업, 자리잡기 등)를 도와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나는 열정이 많이 없는 상태다. 직장도 없으며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없다. 열정을 느끼지 않다보니 그 높던 자존감도 슬슬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저자의 열정이 책임감에서부터 온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혹시 나도 책임감을 가질 무엇인가가 있다면, 열정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문득 태어난지 3주된 조카가 생각났다. 아직은 내 조카, 내 가족같은 느낌이 들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거니 싶다. 그런 조카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조카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삼촌이 되는 것. 그것을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마침 책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책임감에서 열정을 얻는 사람도 있었지만 책임감으로 인해 열정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이게 맞나 싶은 포인트 이후에는 그냥 사람 by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는 책을 읽어도 알지 못한다. 교도관이 어떤 직업인지 정확히 모르며 수감자들이 어떤 사정으로 오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떤지도 알지 못하며 어떤 메커니즘으로 교화가 이루어지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있다. '내가 여전히 알지 못한다'라는 것과 '차가운 담장 안에서 수감자와 교도관들은 나름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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