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감기 / 윤이형
윤이형 작가의 붕대감기를 추천받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절필했다고 하는 윤이형 작가. 나에게 책을 전달해준 분께서는 감명깊은 문장이 있는 페이지마다 책 끝을 접어놓는 버릇이 있는 분이였는데, 이 책은 접힌 부분이 상당히 많아 부피가 꽤나 늘어나있었다. 여성주의, 여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한 책이라고만 소개받고 읽어보았다.
소설은 말 그대로 여성으로만 채워져있다. 스무살 대학생부터 환갑이 가까워가는 환자까지 다양한 여성들을 등장시키며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어떠한 갈등을 겪는지 담담하게 써내어간다.
제목인 '붕대감기'는 진경과 세연의 학창시절 에피소드를 나타낸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그녀들이 친해지게 된 계기이며, 지금까지 그들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증거이자 기억으로 언급된다. 안타깝게도 그녀들은 너무나도 의지하지만 오히려 눈치를 보게 되는 애매모호한 관계가 되고만다. 거기에 만악의 근원 Facebook까지 곁들여지니 서로의 글을 보며 '좋아요'로 견제를 하게되는, 그런 상황까지 이루어지고만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만 등장하고 사라지는 지현이라는 캐릭터가 인상깊었다.
그녀는 헤어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다. 시위에도 참여하며 동지들을 보며 세상을 바꾸어나갈 힘을 얻는 동시에 자신의 직업이 그녀가 주장하는 페미니즘과 너무 정반대의 일이기에 스스로를 숨기면서 살아간다. 머리를 자르러 온 커플을 볼 때면 '머리 자르는 것도 남성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그 머리자르는 일을 자신이 한다는 것에 괴로워하는 모습. 그녀는 종교도 없지만 미용의 신(미용의 신은 여성일테니,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것이라는 해미의 제안이였다)에게 기도하는 것으로 자신의 챕터를 마무리한다.
자신의 신념과 생업이 반대되는 상황에서 그녀는 트윗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물론 그 안에는 날것 그대로의 비난이 담겨있다. 나는 저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생업을 포기하고 신념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아니면 지현처럼 혼자 곪다가 어디론가 방출해버리는 그런 모습으로 남을까.
이 책을 주제로 책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여성들끼리 있는 모임에 나가지 않아서 그런걸까. 나는 꽤나 많은 부분을 공감하기 어려웠다. 여우짓...? 정도만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내 예전 직장이였던 곳 중 두 곳은 심각한 여초직장이였다. 그곳에서 늘 여성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참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유가 저런 여성들 사이에서의 자연스러운 견제 아닌 견제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2030 여성의 절대적인 공감을 끌어내고 있는 붕대감기. 아무래도 내가 여성이 아니기에 '와 이런것까지 생각하면서 친구를 만난다고?' 하는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냥 시궁창 현실을 적나라하게 소설로 옮겼다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아직 내 이해의 범위가 한참 좁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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