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정말 뭘 했는지 모를정도로 정신없는 한 주였다.
지난 주, 내가 배정받은 이번 주 근무는 화요일, 수요일 나이트 쉬프트, 토요일 데이 쉬프트였다. 첫 나이트 쉬프트다보니 이런저런 걱정에 구글링을 꽤나 해보았지만 실상 도움 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고민은 현장에 가서 몸으로 깨달았다.
Q. 18시면 행정직원이 퇴근할텐데 ID카드가 없는 나로썬 어떻게 문을 열고 들어가나?
A. 그냥 가서 누군가가 열어줄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Q. 휴식시간은 어떻게 되나? 데이 쉬프트는 3번 쉬던데
A. 똑같다. 3번 쉬고 그 외에 쉬라고 말하면 더 쉬면 된다. 12시 휴식시간은 뭘 먹을 수 있도록 좀 더 길게 준다.
그렇다. 진짜 고민 1도 안해도 될 문제들이였던 것.
나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15L 생수통 라인에서 일을 했다. 보면 볼수록 여기 공장은 현지 커뮤니티에 가까운 것 같다. 근로자의 70%가 호주 아재들이고 20%는 세계 곳곳의 이민온 노동자들, 10%가 나같은 워홀러들로 이루어져있다. 워낙에 여성분들 비율이 없다보니 우리나라에서 노가다 현장을 가면 이런 분위기가 아닐까 싶은 느낌도 든다.
수요일 나이트 쉬프트가 끝난 목요일, 오랜만에 집에서 여유있게 저녁을 해먹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오늘 나이트 쉬프트 와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작업복 빨래가 막 끝난 상황이여서 미안하다고 못간다고 이야기했는데 문득 여기 사람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에이전시에게 못간다 못간다 여러번 말하면 결국 날 안부를거라고. 그래서 다시 전화해서 '빨래 돌렸는데 말려보겠음. 30분 후에 출근 가능함' 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출근한 나이트 쉬프트. 이번 근무는 생수 라인이 아니라 쥬스 라인이었다. 말이 쥬스라인이지, 그냥 패트에 생산되는 모든 제품들을 라벨링하고, 박스에 담는 작업까지 모두 진행하는 큰 규모의 라인. 자동화가 거의 대부분 되어있어서 내가 하는 일은 진짜 1도 없었다. 그냥 박스를 옮겨담는 일이 전부.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폴이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보길래 나도 그냥 옆에서 웹툰보고, 뉴스보고 그랬다. 아마 12시간 근무중에 반은 핸드폰 만지작 거렸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확실이 생수쪽보다 쾌적하고 편하고 심지어 사람들도 좋았다. 여기 라인은 항시 돌아가는 라인이여서 맴버가 고정인 느낌인데, 생수 라인은 말그대로 수요에 맞춰서 생산되는 라인이여서 그런지 모두가 서로 처음보는 상황에서 일하다보니 서먹서먹하고 스몰톡도 서로 잘 안하고 그랬다.
퇴근하기 30분정도 남았을까, 같이 일하던 나짐 아저씨(남아공 출신이다)가 '내일 나이트 쉬프트 나올 수 있지?' 라며 물어보았다. 나는 토요일 데이쉬프트가 있기에 금요일 나이트 쉬프트는 어려울 것 같다고 고사했다. 알았다며 어디론가 사라지는 나짐. 그러더니 퇴근 직전에 자신이 내 쉬프트를 변경했다며, 내일 그냥 출근하라고 한다. 머리 위에 물음표가 여섯개쯤 생겼지만 알고보니 나짐이 이쪽 라인의 총 담당자였던 것. 나를 잘 봐준건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덕분에 나이트 쉬프트가 하루 더 생겼다.
토요일 데이 쉬프트는 리프팅하는거라고 극구 반대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다행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금요일 나이트 쉬프트를 갔다. 오늘도 개꿀이려니 하고 핸드폰을 100% 풀충전 해갔으나.... 역시 인생은 그렇게 녹록치 않나보다.
8시쯤 되었을까. 갑작스럽게 공장 전체가 정전되었다. (알고보니 퍼스 일부 지역이 통으로 정전되었다고.) 그래서 덕분에 기계는 돌리지 못하고 기계 청소하는 날로 변경 되었다. 끈적거리는 기름때와 시럽들을 닦아내다보니 또 하루 근무가 끝났다. 그래도 생수 공장에서 일한 것 보다는 훨씬 편한 근무였다.
그리고 페이슬립을 받았다. 이메일로 친절하게 날라왔는데 날짜 갱신을 보니 일주일 단위로 날라오는 듯 했다.
지난 주에 한번밖에 일을 하지 못했지만 쉬프트가 12시간인지라 정산된 돈은 245달러. 대략 196,000원인 셈이며 시급으로 치면 만육천원 조금 넘는 금액.
이번주에는 4일 일했으니깐 196,000*4*1.2(나이트쉬프트는 1.2배)=940,800원이 들어올텐데. 확실히 돈을 많이 벌긴 하는구나 싶다. 일주일에 노트북이 하나씩 생기는 느낌이라니. 이제 이 40만원짜리 인민에어도 보내줄 때가 멀지 않았구나 싶다.
일하다보니 영어로 말하는 것이 조금씩 되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새벽 5시가 넘어가면 긴장이 풀려서인지 마치 리미트가 풀린 것 마냥 술술 잘 이야기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에스토니아 친구랑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떠들고 있다가 내심 '어떻게 내가 얘랑 떠들고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정도 지내니깐 이게 되는구나 싶으면서도 더 욕심이 난다. 아직은 호주사람보다 이민계 노동자들의 영어가 더 듣기 편하다. 아마도 딱딱 내가 아는 단어들이 들려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방법이든 더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싶다.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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