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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코로나 확진 열번째 날. 생활치료센터 마지막 밤

Badack 2021. 3. 11. 23:09

'내일 오전 퇴소이시니까'

아침에 자가검진을 하니 의료진으로부터 두드러기 확인과 함께 '내일 오전 퇴소'라고 안내받았다. 내일 오전 퇴소라니. 드디어 여기를 벗어날 수 있는건가. 드디어 코로나와 다시 헤어질 수 있는 것인가.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아직도 멀었다. 목동쪽 음압병실로 이송된 엄마의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며(음압 유지 장치의 소음이 너무나도 커서 잠을 잘 못주무신다고...) 집에서 자가격리중인 아빠의 상태도 불안불안해졌다. 내가 코로나에 걸린 그 날 그 자리에 함께했던 친구도 컨디션이 안좋다고 하고. 그리고 무려 나 때문에 2주 자가격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격리 마지막날인 오늘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난 동생도 있다. 

 

요 몇일동안 멘탈을 가다듬지 않았다면 또 한 번 멘탈이 나갔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멘탈을 지키고자 한다. 당사자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힘들어서 안될 것 같더라. 걱정을 하되, 내가 해줄 수 있는 한도에서만 걱정하고 걱정을 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굳이 신경쓰지 않는걸로 방향을 잡았다.

 

머리가 살짝 아픈것도 있고 생각이 많아진 것도 있어서 낮잠을 자려고 했다. 꼭 이럴때 연락이 많이온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 하루. 첫 번째 전화는 한국조혈모세포은행. 5월로 예정되어있는 조혈모세포 기증도 아마 정상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현재 코로나 확진자들도 치료받은 이후 7일이 지나면 조혈모세포 기증을 진행하고 있으니 나 또한 괜찮을 거라고 안내받았다.

두 번째 전화는 관악생활치료센터 담당 의사선생님. 아마도 관악보건소의 주치의 정도 되시지 않을까 싶다. 내 상태에 대한 관심도도 있지만 통화해보니 엇그제 이송한 엄마의 컨디션이 궁굼하셨던 듯. 담당 의사의 소견으로는 이 곳에서의 치료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보니 경과가 궁굼했던것 같다. 약간의 폐렴증세와 미열정도가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럴 줄 알았다며 이송하길 잘했다고 말씀하시는 의사선생님. 뭐.... 당신이라도 좋으면 된거죠....네....

세 번째는 오늘 생활치료센터로 이송하는 동생. 신림역쪽에 살고있기에 당연히 내가 있는 관악생활치료센터로 오겠거니 싶어서 이런저런 생활팁들+챙겨야하는 물품들+안챙겨도 되는 물품들을 알려주었다. 슬리퍼나 손톱깎이같은 디테일한 부분들도 있으니 왠만하면 가볍게 몸만 오라고. 근데 이 친구는 이상하게도 용인쪽에 있는 생활치료센터로 날라갔다. 관악구 시설이 다 찼나 싶기도 한데 그러기에 우리 층 복도는 텅텅 빈단말이지. 당장 내 양 옆 방들만 해도 비어있다. 동거하는 여자친구도 같이 확진되어서 키우던 강아지가 어디 센터로 이송된다고 하던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아 보여서 마음이 쓰인다. 그래도 강한 친구니깐 잘 버티리라 믿고 종종 연락해봐야겠거니 생각했다.

 

간결한 퇴소 안내문

저녁과 함께 퇴소 안내문이 배달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여기에 문의하지 마시고 보건소에 문의하세요'인걸보니 진짜 퇴소하나보다 싶다. 바로 사진을 찍어서 가족과 회사에 전달했다. 축하해주는 가족들과는 달리 회사는 이것 나름대로 더 바빠진듯, 바로 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사실 퇴소했다고 바로 출근하기에는 좀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긴 하다. 일단 첫째로 내 컨디션. 퇴소를 했지만 나는 아직도 코로나 양성 보균자이다. 10일간의 격리생활동안 코로나바이러스는 비활성화 상태가 되었으며 전염성과 재발 가능성은 0에 수렴하게 되었다만, 코로나 검사를 하게되면 아직까지는 검사결과가 양성으로 나온다고. 의료진 안내에 따르면 개인마다 편차가 다르긴 하지만 2주에서 몇 달까지 걸린다고 한다. 이럴 경우 출근은 회사의 내규에 따라서 진행되는데, KBS는 현재 '코로나 진단 결과 음성인 경우'에만 한해서 출근을 한다고 하니 데스크에서 한 번 더 확인하고 다시 알려주겠다고. 

둘째로 아직 아빠가 자가격리중이다. 아빠는 수요일까지 자가격리 기간을 가지는데 하필 어제부터 컨디션이 좀 안좋으시다고. 콧물과 약간의 쌀쌀함, 식욕부진 정도가 증세여서 막 심각한 단계는 아닌데 일단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걸 떠나서 일단 자가격리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경우 출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문제 역시 데스크에서 확인 후 알려주겠다고 한다. 

 

나도 내일 동작보건소와 이런 저런 통화를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안내하기 위해서 담당자가 연락한다니, 그 때를 노려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안내받고, 회사로 토스해야겠거니 싶다. 뭐.... 그럴일은 없겠지만 외박을 해서라도 출근하라고 한다면 에어비앤비 빌려서 매일 한 두명씩 초대해야지 :)

 

 

 

1인칭으로는 큰 상황 없이 코로나 치료를 잘 끝냈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상황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래도 잘 버틴 것 같아 다행이다. 내 주변 사람들도 빠른 시일 안에 일상으로 돌아왔으면. 언제쯤 우리는 같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을까? 다들 보고싶다.

 

내일이 마지막 일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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