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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sweet home/life

코로나 확진자가 아파트에 생겼다. 나 코로나 PTSD 있나봐

어제 5시.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작은 소리로 아파트 전체 방송이 나온다. 또 뭐 층간소음이려니... 하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친구에게 갑자기 카톡이 온다.

 

뜬금없게도 우리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방송이라며 정신 차리고 다시 들어보라고 한다. 귀를 기울여보니 조그만 소리로 '저희 아파트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였으나 이미 방역은 다 마친 상태이니...' 라는 말이 들린다. 아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급하게 코로나 문자 받은 것을 뒤져보았지만 다른 지역에 있다가 집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문자가 오지 않았나보다. 동작구청 블로그에 코로나 확진자 리스트가 박제되어있다는걸 깨닫고 급하게 들어가보았다. 

오늘 확진자 판정이 나온 사람 중에 우리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은 1명 뿐이였다. 이 사람이구나. 60대 남자이며 감염 경로는 종교모임(성북구 소재교회)이며 동거인(가족 4명)이 있다고 한다. 요 몇일 핫했던 '그 교회'를 다녀왔구나. 심지어 가족도 넷이나 있구나. 

 

오늘 아파트에 공지가 붙었다. 

카톡한 친구는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이야기했지만 나는 달랐다. 호주에서 열심히 괴롭힘 당하다 와서 그런걸까. 코로나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멘탈이 찢기는게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액션은 다 취한 것 같다.

 

1. 1339에 전화를 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하는지, 접촉자 확인은 어떻게 확인하는지 물어보았다. 교육시설이나 학교에 근무하지 않는 이상 접촉자가 아니라면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받았으며, 접촉자 확인은 관할 보건소에 문의하면 된다고.

 

2. 관할 보건소에 전화를 했으나 휴일인 탓에 120 다산콜센터로 연결이 되었다. 관련 부서를 찾아준다면서 연결 해 준 곳은 동작구청 상황실.

 

3. 동작구청 상황실에서는 아마도 확진자 이동 경로 파악이 끝났을 것이며, 접촉자에 해당될 경우 관할 보건소에서 연락이 갈 것이니 기다리라고 연락 받았다. 또한 보건소 전화가 잘 안될경우 코로나 담당자와 바로 통화할 수 있는 직통번호를 알려주었다.

 

4. 접촉자가 아닐 경우, 회사 출근은 회사 재량이라는 1339의 권고에 따라 회사 데스크에 상황을 보고했다. 데스크에서는 내일 아침 접촉자 확인 후 다시 보고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5. 9시에 관할 보건소로 전화를 했다. 당연스럽게도 대기인이 너무 많아 아에 대기조차 안되고 전화가 끊어지는 상황. 30분 정도 시도를 해보다 동작구청에서 알려준 직통번호로 전화하니 바로 담당자가 전화를 받는다. 상황과 신상정보(이름, 생년월일, 주소, 핸드폰번호)를 말하니 '접촉자가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 부모님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확진자는 몇 동에서 나온건지 물어보자 '해당 확진자는 가족도 모두 음성이며 아파트 내 접촉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불행 중 다행

 

6. 바로 회사와 가족에게 이야기했다. (나 이외에는 별 걱정이 없었던 것 같지만) 여튼 가족을 안심시키고 10시 30분, 회사로 출근했다.

 


밤새 계속 긴장해서인지 아침부터 땀이 뚝뚝 떨어진다. 한 번 예민해진 텐션은 회사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아무것도 안했는데 티셔츠는 금방 다 젖었다. 그렇다. 망한 하루였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그룹PT와 주짓수가 같이 이루어진다. 

최근 퇴근 후 유일한 낙인 헬스장을 갔다. 이 헬스장, 다닌지 한 달 되었는데 이전부터 문제가 몇개 보였다. 기구의 단점이나 물리적 장소의 단점은 둘째 치고 이 곳은 상주하는 트레이너가 따로 있지 않은 곳이다. 그룹 PT를 담당하는 트레이너와 주짓수 사범을 제외하곤 데스크 직원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동을 하면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제지하는 행위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헬스장 들어올때부터 마스크를 안쓰는 사람들을 만류하지도 않는데 말 다했지 뭐. 같이 운동하는 친구는 마스크 쓰면 답답해서 어떻게 운동 하냐고 말한다. 물론 나는 꿋꿋히 마스크를 쓰고 친구를 열심히 욕했다 :)

 

예전에 다녔던 주짓수도장.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온다.

내가 다녔던 관악의 모 주짓수 도장. 무릎을 다친 이후로 늘 그리워만 하는 갓갓 도장이다. 가끔 주짓수 하고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블로그로 근황을 확인하곤 했는데 이것 봐라. 역시 갓갓 사범님, 갓갓 도장답게 마스크를 쓰고 주짓수를 한다. 이게 제대로 된 운동시설이지 않을까 싶다. 그 힘든 주짓수를 하는데도 마스크를 쓰고 진행한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세계관 최고의 도장 아닌가.

 

여튼, 헬스장도 이젠 안가기로 결심했다. 어짜피 재등록 기간도 얼마 안남았고, 오늘 7시에 운동을 갔음에도 아무런 공지 없이 신규 회원을 받고있는 것을 보았을때.... 큰 차도는 없지 않을까 싶다. 거의 매일 운동 다니면서 참 즐거웠는데, 당분간은 런닝이랑 자전거로 다시 갈아타야 할 듯 싶다.

 

하나 더 아쉬운 것이 있다. 아마도 독서모임을 진행하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독서모임의 특징 상 카페 같은 공간에서 무엇인가를 마시면서 이야기 할 텐데. 이런 모임을 최소화 하는게 나에게도, 같이 하는 분들에게도 (아쉽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일단 내일이 공지날이니 한 번 물어보긴 해야할 것 같다만, 일단 마음은 안하는 것으로 굳혔다. 보고싶은 사람들인데, 아쉬울 따름이다. 

 

 

코로나 때문에 호주에서 도망쳐나왔는데, 한국에서 다시 코로나로 고생할 줄은 몰랐다. 가족이랑 함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만, 3단계까지 가면 진짜 가만안둘꺼야 너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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