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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sweet home/life

#1 코로나 확진 첫 날. 호접지몽

뭐. 그렇다. 자랑은 아니지만 코로나 양성 확진을 받았다. 격리시설에서 벗어나는 날까지 하루에 하나씩 글을 써 보자.

 

 

HAPPY BIRTHDAY, Mr.Kim

모든 일의 시작은 지난 일요일, 내 생일을 기념해서 친구들과 함께 여의도의 칵테일바를 간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우리는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축하할 일도 있고 해서 오후 4시부터 신나게 칵테일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먹고 마시며 놀았다. 

 

그리고 상황은 금요일로 건너뛴다. 프로그램 촬영을 하고있던 도중, 점심을 먹은 후부터 미열과 콧물, 어지러움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촬영장에 있는 체온계로 온도를 체크해보았지만 너무나도 정상체온이었던지라 그냥 비염이 도져서 어지러운 건가 싶었다. (날씨가 봄날이 된 것도 한 몫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금토일 3일 동안 내리 몸살로 인해 집에서만 요양을 했다.

수시로 온도를 재어보았지만 37.8도와 38.0도를 한 번씩 기록한 것을 제외하곤, 늘 37.5도 이하였다. 혹시나 싶어서 종합감기약과 타이레놀을 먹지 않아보았지만 온도는 마찬가지. 그냥 무기력증과 피곤함, 두통과 인후통, 미열이 계속되길래 '이번 몸살은 오래가네?'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코로나 검사를 받아놓는 것이 좋겠거니 싶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것도 있고, 나 스스로도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일요일 11시에 보라매병원을 찾아가보았다. 안타깝게도 일요일 검진은 다 끝났다고 해서 월요일 아침 9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곳에서 1시간 반을 대기한 끝에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제야 긴장이 거의 다 풀려서 눈을 감고 잘 수 있었다....... 고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코로나의 품에

오후 3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지난주 일요일에 방문했었던 칵테일바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고. 

 

‘여의도 칵테일바’ 12명 집단감염

서울 여의도의 한 칵테일 바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2명이 나왔다. 1일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사무실 밀집 지역인 여의도의 한 칵테…

www.donga.com

며칠에 걸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고 하며 나에게 빨리 검사를 받아보라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오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니 잘했다면서 이제 자가격리를 2주 동안(방문일 기준이다 보니 7일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진행하라고 안내받았다. 뜻밖의 밀접접촉자행이 반갑지 않아서 한동안 멘탈이 나가 있었지만 한 번 해봐서인지 능숙하게 마스크를 쓰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회사에도 밀접접촉자가 되었다고 보고하고 이런저런 행정적인 액션들(주로 접촉자 명단 작성과 동선 확인이었다)을 취하다 보니 밤 11시를 넘겼다. 생각보다 사회생활하면서 자가격리하는것이 쉽지 않구나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3.1절인데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고생한 근무자들과 회사 담당자들에게 리스펙.

 

축하합니다 K-방역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월요일엔 곤히 자던 중에 영등포 보건소로부터 전화를 받아 확진자 안내를 받아서 비몽사몽간에 대답했었다. 그리고 오늘 화요일, 또 아침에 전화가 왔다. 아침 9시 30분쯤이었다.

 

'김태우님, 이야기 들으셨죠?'

 

아니 또 뭐가 잘못됐지? 뭔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하는 건가? 한참 가라앉아있는 목소리를 억지로 깨워 들은 것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더니 번개 같은 한 마디가 나머지 잠을 깨웠다. 

 

'김태우님 어제 코로나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오셔서....@%!#!'

 

퓨즈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의외로 파삭파삭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끊어지는데 딱 그 소리가 내면에서 들렸다. 정신줄을 놓는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싶다. 호주에서 코로나를 피해 탈출해온지 딱 11개월, 그동안 있던 모임도 다 캔슬하고 친구들과의 모임도 최소화하면서 살았는데 정작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버렸다.

 

멘탈이 나간 나를 뒤로하고 나머지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회사는 나와 접촉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을 조기퇴근+선별진료소로 보냈으며 추가적인 트래킹을 위해 나에게 정보를 요청했다. 영등포구 보건소는 내 담당인 동작구 보건소(담당 보건소는 현 거주지에 따라서 지정이 되는 듯 싶다)에 내 정보를 다 넘겼으며, 동작구 보건소에서는 나에게 수요일부터의 트래킹 자료들과 카드 번호, 지인들 번호 등등 역추적에 용이한 정보들을 모두 넘겨달라고 이야기했다. 

 

12시쯤 작업을 거의 다 마무리지었다. 2시반쯤에 구급차가 아파트로 와서 데려갈 테니 조치사항들을 숙지하라는 연락을 받았으며 나는 곧 관악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된다고 안내받았다. 검색해보니 서울대학교의 기숙사+교수동을 코로나용 생활치료센터로 사용 중이라고 하니 아마도 이쪽으로 이송되지 않을까 싶었다.

 

울적한 기분을 뒤로하고 싶었지만 감정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나로 인해 피해를 보는 KBS 사람들, 같이 일하는 친구들, 엄마 아빠와 킨킨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 부모님까지. 한 명 한 명이 나로 인해 어떤 대미지를 입을지 감히 상상할 수 도 없다. 누군가는 최종 면접에 합격한 회사에서 코로나로 인해 탈락할 수 도 있는 것이고, 누군가는 열심히 준비한 시험을 치르지 못할 수 도 있다. '그게 다 내 잘못이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 상황이 일어난 경로에는 내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다. 지금도.

 

7월에 우리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는 회사에 보고를 했더니 접촉 여부가 파악되는 대로 출근을 정해보자 해서 오후에 출근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접촉자가 아니었기에 출근을 한 것이었지만 사람들(특히 상사들)이 나를 보는 눈빛에는 불신과 약간의 혐오가 섞인 감정이 담겨있어서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었다.

그런데 이젠 차원이 다르다. 그냥 내가 숙주다. 나로 인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될 수 도 있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말하면서 '이 친구는 요즘 어떤 일 때문에 힘들어해'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소중한 친구들을 코로나 익스프레스에 태워버린 것이다. 스스로가 참 무능하다고 느껴졌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짐을 싸다보니 대충 가방 하나를 다 쌌다. 웬만한 생활용품은 제공해준다 그래서 최소한의 물품들만 들고 갔다. 

 

 

관악 훈련소?

익숙하지 않은 공간. 자고 일어나면 내 방 천장이 보일 것 만 같은 느낌. 이게 꿈인가...? 싶은 기분이 연속적으로 든다. 정확하게 7년 전 논산훈련소에서 느꼈던 감정과 유사한 것 같다. 두려움 반절, 현실 부정 반절. 

살짝 졸다가 깰 때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잘 안된다. 지난 일요일까지 집에서 누워있던 것은 확실한 현실인데, 월요일부터 지금까지는 마치 꿈같이 느껴진다. 어젯밤만 해도 이 시간에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웬 이상한 공간에서 노트북 불빛만을 보고 있고.

 

지금은 난곡사거리에 있는 모 호텔에 격리되어있다. 아마도 이 호텔 통째로 격리시설화 한 것 같은데, 시설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밥도 뭐 그냥 너저분하게 나온다. 작년 뉴스로 빵 하나와 우유 하나를 식사로 준 격리시설이 있다는 걸 보았는데 그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물론 모든 군필자들은 '짬밥보다 더하네;;'라고 말하겠지만.

 

현재 나는 2인 1실을 쓰고 있다. 옆 자리에 있는 사람은 우연히도 나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술을 마셨던 또 다른 사람이다. 원래 이렇게 룸메이트 배정을 해주나 싶기도 하다만 굳이 그런 것까지 알고 싶진 않다. 친해져야 10일 동안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도 싶었다만, 아무래도 친해지면 많이 떠들게 되고, 많이 떠들면 그만큼 비말이 날릴 테니 2차 감염 같은 게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면서 거리를 두는 걸로 결정.

근데 이 분, 코골이와 잠꼬대가 엄청나다. 코골이야 뭐 찜질방 가면 흔히들 들을 수 있는 탱크 소리 정도인데, 잠꼬대로 음료수를 주문하신다. 앞으로 10일간의 밤이 걱정될 뿐이다. 

 

그래도 불침번 안서는 군대라고 생각하려 한다. 어떻게든 멘탈을 잡고 여길 탈출하겠어.

앞으로 남은 시간은 노트북(게임, 영화)과 노트(영문법, 작문)로 어떻게든 소화시키려고 한다. 내 몸이 정상화되면 조금씩 운동도 해서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야지. 5월에 있을 조혈모세포 기증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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