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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yager/23 Bali

D+3 녜삐데이

하루동안 아무곳도 갈 수 없고 그저 사적 공간에만 있어야하는 녜삐데이.

우리는 녜삐데이 전에 공항을 들려야했기에 꾸따 근처의 호텔에서 2박 3일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녜삐데이의 아침.

 

역시나 호텔 밖으로는 나갈 수 없게 통제되어있었고

아침 조식으로 나온 것들은 오믈렛과 씨리얼을 제외하면... 부페식이였지만 모두 다 이쪽 동네 음식이여서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나는 동남아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신맛이 나는 국만 엄청 먹었다.

과거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있을 때 이 음식에 적응을 해 놓았기에 나에겐 따뜻한 사골국물 같은 위상이였지만

친구들에겐 그저 먹기 어려운 음식이였는지 단 한 숫가락도 먹지 않았다.

 

기대했던 과일들은 DP된지 오래되서일까, 푸석푸석하고 말라있는 느낌이여서 파파야만 조금 먹고 더이상 먹지 않았다.

마가리타 잔에는 흰색 액체와 젤리들이 담겨져 있었는데, 디저트류에 있길래 하나 가져와서 먹어봤다....만 코코넛밀크와 젤리의 조합이였다. 덕분에 입을 씻기 위해 다시 신맛 국을 한 그릇 해치울수밖에 없었다.

 

 

딱히 할 것이 없다보니 그냥 낮잠만 주구장창 잤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런치는 12시부터 2시까지였는데, 우리는 모두 다 2시 이후에 일어나서

어제 편의점에서 비상식량으로 사온 라면으로 점심을 해치웠다.

신라면은... 할랄푸드 버전이여서 그런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맛이 아니였고 오히려 새우탕면에 가까운 맛+식감이 구린 맛을 보여줬다.

다른 라면들은 모두 실패에 가까웠고 불닭볶음면과 UFO 라면의 조합만이 성공했다. 

군필자 세명이 모이면 어떻게든 먹을 순 있나보다 싶었다.

 

이후 나는 밀려있던 공부들과 영상 편집을 했고

호텔 디너 시간이 6시부터 8시까지다보니 그 중간 어딘가쯤에서 그냥 밥을 먹으러가면 되겠거니 싶었다.

헌데 늦은 시간에 라면을 먹어서 그닥 배가 고프지 않았던 우리는 디너 부페를 가기보단 룸서비스를 시켜먹기로 했고

다들 정신을 차린 8시, 룸서비스를 신청하려고 전화기를 들었....지만

 

역시는 역시. 룰 대로 되는 것이 없다.

분명 녜삐데이 안내서에는 24시간 룸서비스 제공이라는 멘트가 써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룸서비스 담당자는 이미 오늘 룸서비스는 마감이며 디너 부페가 8시 이후에도 제공되긴 하니 가서 먹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정도로 배고프진 않은데... 하면서 부페를 먹으러 갔건만, 이미 대부분의 음식은 떨어진 상태고 남아있는 것이라곤 간장에 졸인 치킨과 정체불명의 스프 두세개정도.

 

이걸 인당 1만원을 내면서 먹는건 오바라는 판단을 내린 우리는 비상식량들을 싹싹 긁어모아서 저녁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자 시도했다.

 

 

그렇게 우리는 신라면컵 두 개, 봉지 신라면 하나, 오레오 하나, 초코파이 두개, 맥주 두 캔, 보드카와 그린라벨 조금 남은것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누군가 발리가서 뭐했냐고 물어보면 뽀글이 해먹었다고 꼭 말할테다.... 힌두교 out... 

 

정말 다행인것은 여기 신라면이 제조방식이 좀 다른지 작은 사이즈 컵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포만감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남정네 셋이서 저정도를 먹고 배고프지 않았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La가 담배를 피러 호텔 1층에 나간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나갔다.

모든 불들이 꺼진 날이다보니 하늘의 별들은 매우매우 잘 보였고

맨 눈으로도 은하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좋았다.

독도에서 처음 별을 보았을 때, 피나클스 사막에 누워서 별똥별을 보았을 때가 생각나고 괜히 감성 모드가 되어버렸지만

이윽고 콧속을 뚫고 들어오는 담배향에 현실로 돌아왔다. 

(발리는 실내 식당에서 담배를 펴도 상관없다. 당연히 호텔 로비도 마찬가지)

 

 

오늘 하루 호텔의 통수작렬에 얼얼함을 느꼈던 우리는 내일 조식을 2시간동안 먹을거라는 큰 포부를 품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은 꾸따 지역을 떠나 우붓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과연 어떻게 되련지.

 

비치클럽 추종자인 La와 

서핑 추종자인 Lee 사이에서

불운의 상징이 되어버린 나는 어떤 여행을 더 즐길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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