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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yager/23 Bali

D+4 녜삐 탈출, 우붓 구경

녜삐가 종료되었다.

 

우리는 정체불명의 호텔 조식을 먹으며 탈출을 감행했고

대충 조식을 때려박은 후, 그래도 오랜만의 외출인데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근처 커피집들을 찾아보았다.

헌데 오픈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커피집들은 문을 열지 않았고

심지어 믿어 의심치않던 스타벅스조차 문을 닫고있었다.

 

녜삐 전날엔 대부분의 노동자가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며 이에 따라 아직 일하는 곳으로 복귀하지 못해 정상적인 일처리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아마 녜삐 다음날이여서 아직 문을 열지 않았겠거니... 생각했다.

 

좀 더 발품을 팔다가 도착한 곳은 Dripz coffee.

호텔에 붙어있는 커피집이였는데 유일하게 문을 열어서 들어갔다.

주문을 하려보니 long black과 americano가 있길래 오 여기 좀 잘 하는곳인가보다 싶어 냉큼 아아 두개와 라떼 하나를 주문했다.

결과는 대성공. 

한국의 메가커피와 맛이 비슷했지만 고된 녜삐 이후에 마시는 한국식 커피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당장 메가커피 발리점 분점을 내야한다며, 얼마의 투자와 순이익이 뽑아나올 수 있는지 이야기하며 그랩을 불렀다.

 

 

그렇게 꾸따를 출발해 한 시간 반 만에 우붓에 도착했다.

꾸따를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가 해변가에 있는 도시라면 우붓은 숲 속에 있는 도시다.

요가와 명상, 마사지 등이 유명하며 왕궁 투어, 화산 트레킹이 유명하다고.

 

우리는 그냥 가서 좀 여유를 즐기고 싶었기에 따로 프로그램은 예약하지 않았고

숙소에 있는 풀장에서 좀 놀다가 시간 남으면 마사지나 받고 요가 클래스나 알아보는걸로 대충 합의를 보았다.

 

숙소가 시내와 걸어서 10분밖에 안걸리는 위치여서 동네를 산책하기가 편했다.

왕궁(이라 읽지만 경복궁 근정전만한 사이즈)도 구경하고 그토록 명물이라는 우붓 스타벅스도 구경했다.

덥고 습하다보니 걸어다니기가 힘들어서 근처 식당에서 칵테일 세 잔과 칩스, 강낭콩을 시켜서 간단히 에너지를 보충했다.

시장도 들려보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는데 크게 감흥이 있진 않았고

좁아터진 골목을 가득 채우는 오토바이와 차량들로 인해 매연에 고통받은 우리 눈이 엄청난 혹사를 하고 있다는 것만 깨달았다.

 

대충 이런 수영장

더위와 매연에 짜증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서 수영장에 몸을 담굴 생각만 있었고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전세낸 듯 동네사람들에게 여기 한국인 셋이 아주 신나게 놀고 있다고 광고를 했다. 무려 두 시간 동안.

 

얼추 배가 고파졌겠다, La가 한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La는 발리 온 지 열흘이 다 되어갔다) 시내에 있는 한식집을 갔다.

김치볶음밥, 된장찌개, 비빔국수 삼겹살을 시켰는데 방금 글 쓴 순서가 맛의 순서와 일치한다.

김치볶음밥은 한국에서도 먹기 힘든 맛있는 수준

된장찌개는... 된장찌개 맛이 아니라 고추장찌개 맛이였지만 이것 또한 굉장히 맛있는 수준 (덕분에 1인 1 공기밥도 나중에 추가했다)

비빔국수는 그냥 쏘쏘. 많이 불어있는 면이네~ 정도

삼겹살은 딱 받을 때도 이게뭐지? 비쥬얼이고 먹을때도 이게 맞나? 식감으로 먹었다. 일반적인 삼겹살과는 다르게 야끼니꾸를 먹듯 조리해서 먹는게 특징. 덕분에 가운데 앉은 La는 얼굴에 연기가 가득 들어왔다. 맛도 쏘쏘, 값은 베리 익스펜ㅅㅂ

 

방에 돌아와 뒹굴뒹굴 거리고 있다보니 오늘 좀 피곤한 것 같아 마사지나 받으러 가자고 친구들을 꼬셨다.

원래 가려고 봐둔 곳은 예약이 꽉 찼다 해서 어쩌지 싶었는데

'어짜피 어딜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La의 말을 듣고 그냥 바로 옆에 있는 집으로 갔다.

 

마사지샵 뷰가 좋더라

가정집 2층을 마사지샵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는 곳이였는데

우리가 들어가니 앞에 손님이 있어 5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기다리고 있으니 동네 아줌마들 두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더니 인사를 한다.

아마도 여기는 손님의 명수에 따라 마사지사를 파견받는 형식? 이지 않나 싶다.

재야의 고수지만 이젠 은퇴한 아줌마들이다 vs 그냥 백수 아줌마들 놀러오는거 아니냐 에 대한 심도깊고 생산적인 토론을 하면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이모님들은 재야의 고수였다. 손놀림도 찰지고 무게 쓰시는 것도 찰지고. 셋 다 나른해질 수 밖에 없는 손놀림이였다.

덕분에 2층 계단을 아기기린마냥 허우적 거리며 내려왔다.

 

야식으로 뭘 좀 먹을까 싶어서 피자+까르보나라 셋트와 피쉬앤칩스를 먹었다.

피자와 파스타는 배달, 칩스는 포장을 해왔는데

역시나 이 동네는 배달은 빠른데 조리가 참 늦다. 주문하고 35분쯤 지나서야 겨우겨우 포장을 해줬다.

심지어 그때 홀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발리타임.

 

 

남아있는 그린라벨 조금과 빈땅 맥주를 마시면서 '왜 이 나라는 자기네 음식은 복불복이면서 서양 음식은 늘 마스터피스냐'고 역시나 생산적이고 기록적인 대화를 나눴다. 

 

이윽고 찾아올 함정카드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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