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심심하면 meet up 앱을 깔아서 사람들을 만나보라는 권고를 해주었다. 깔아만 놨지 어떻게 참여하면 되는지 한참 고민하다가 기억 속 저 멀리에 담궈놓고 있었는데, 어제 오일쉐어를 같이하던 형이 믿업에 가보는게 어떻겠느냐 이야기를 해서 냉큼 고고하기로 했다.
노스브릿지의 카페에서 진행된다는 이번 meet up은 출발할 때 확인해보니 약 30명이 참석하는 것으로 등록되어있었다. 형과 나는 영어의 늪에 빠질 생각에 한숨을 푹푹쉬며 긴장한 채로 카페를 들어갔다. 카페 한 가운데는 큰 테이블에 누가봐도 서로 처음 만나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열댓명정도 있었고 우리는 그 끝에 앉아서 자기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이런 모임이 어떻게 진행될까 상상을 해보았다. 주최자(organizer라고 부르더라)가 오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서로 인사를 한 후, 짧은 대화들과 게임들을 하려나...? 하고 예상했었다.
근데 여긴 내 예상과는 달랐다. 각자 알아서 마실걸 주문하고(안 시켜도 된다고 했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근처 사람들과 떠드는 모임이였다. 여튼간 나는 근처에 앉은 대만인 '팬'과 일본인 '나우', '이오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 넷이여서 칙칙한 이야기만 하려나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말하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했다. 생체공학을 공부했다는 팬은 지금 여기 대학에서 제과를 배우고 있다는데 퍼스에 산지 5개월이 되어서 우리에게 많은 맛집과 여행지들을 추천해주었다. 나우는 UWA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퍼스에 온지는 꽤 됐지만 매일매일 학교와 도서관에서 숙제하느라 이렇게 meet up 나오는 걸 빼면 거의 자유시간이 없다고 한탄한다. 이오리는 프로그래머인데 맬버른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왔다고 한다. 워킹비자로 호주에 체류중이지만 곧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것이라고 한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남자 넷이서 세 시간 네 시간을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만과 중국의 관계, 내 군생활 이야기, 일본어 스피킹 연습, 서로 아는 다른 나라 문화 말해보기 등 예상보다 훌륭한 대화들이 진행되었다. 일본인 친구들에게 얼 마전 한국에서 city pop이 한참 유행이였으며 plastic love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 했지만 정작 둘은 city pop이란 단어를 전혀 모른다는게 함정.
이후 일정이 있는 나우와 이오리는 떠나고 팬과 형, 그리고 나는 셋이서 밥을 먹으러 갔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맥주마시러 같이 가지 않겠느냐 청했지만 나는 차가 있고, 형은 피곤하고, 팬은 밥이 먹고싶다고 해서 우리 셋은 따로 빠져나왔다. 여튼간 팬이 시티 식당들을 꿰고있다보니 걸어가면서 이 집은 뭐가 맛있다, 여기는 일본음식점인데 오너가 필리핀인이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며 나의 구글맵을 풍족하게 만들어주었다.
함께 간 식당은 Tak Chee House. 간만에 훌륭한 외식을 한 것 같았다. 10불밖에 안하는 저렴한 가격에 고봉밥과 치킨, 그리고 찐한 국물까지. 가성비 갑인 식당이 아닐까 싶다.
카페 홀이 높고 사람이 많아서 소음이 심했던지라, 서로 말할때마다 신경을 써서 들어야 해서였을까. 집에 돌아왔더니 녹초가 되었다. 세탁 돌리려고 했던건 내일 로트네스트를 다녀와서 해야겠다. 머리가 지끈거리니 오늘은 좀 일찍 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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