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부가 어제 자국 국경을 봉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나는 호주-인도네시아-한국 노선의 마지막 탈주자로써 31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24일간의 호주 생활이 끝났다. 이제는 눈을 뜨면 새소리가 들리는 쉐어하우스 방이 아닌 암막커튼이 쳐져있는 내 방 침대에서 일어난다. 365일을 목표로 삼고 한국에서 출발했기에, 1/3정도밖에 살지 못한 이 호주 생활이 아쉬울 따름이다.
계획대로라면 11월 말에 한국으로 입국 한 후, 1월 즈음에 하와이로 건너가서 일을 해볼 생각이었다. 1년정도 일을 하면 대략 1.5~2만불(천만~천오백만원)정도의 돈을 벌었을 것으로 예상했고 그걸 기반으로 여행도 다녀볼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5500불을 들고 왔다. 처음 정착금으로 5000불을 들고갔으며 환율이 800원대에서 730원대로 떨어진 것을 고려해보면 그냥 4개월 호주 무료체험을 하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라도 생각해야지 싶다.
호주를 가게 된 것은 반쯤은 계획적이였고 반쯤은 충동적이였다. 2017년부터 워홀을 가고싶어했으나 직장, 여자친구 등의 이유로 한국을 떠날 수 없었던 상황이였는데 2019년 여름,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만에 준비해서 떠난 호주 워홀이였는데 이렇게나 빠르게 돌아올줄이야. 호주 간다고 farewell해주던 친구들, 형 누나들이 한둘이 아니였는데 고작 4개월이라니.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뭔가 1년 열심히 살고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고, 사진도 보면서 웃고 떠들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후회되진 않는다. 혹시나 후회될만한 것이 있을까 사흘정도 고민해보았지만 딱히 있지는 않았다. 물론 아쉬운 것들은 참 많다. 교회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대만 친구인 판과 더 많이 만나지 못한 것, 토론클럽을 한 번밖에 가보지 못한 것, 막 런칭한 인문학모임을 진행해보지 못한 것, 강가에서 카누를 타보지 못한 것, 로드트립을 가보지 못한 것, 서핑보드를 제대로 타지 못한 것, 더 많은 사람과 만나보지 못한 것,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 아이스크림 차가 왔을 때 사먹지 않아본 것, 기타 레슨을 끝까지 진행하지 못한 것,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실패한 것 등등.
욕심, 욕망이 있는 사람으로써 아쉬움은 당연한 것이겠거니 싶다. 그저 후회스러운 일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싶다. 지금 당장 호주를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4월 3일 티켓을 예약했던 지인만 두 명이 있는데 그들은 호주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카타르 경유를 알아보고 있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되련지.
여름을 보내고 왔더니 봄이 되어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국에서 우리는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빈둥거리고 놀기에는 내가 답답해서 안되겠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봐야할 듯 하다. 이번 자가격리 기간동안 무슨 일을 해야 재미있게 한국에서 살 수 있을까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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