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친구와 근황을 주고받는 도중이였다.
'넌 왜 여행안가? 돈도 꽤 버는구만'
'아직 여유가 없어 ㅎㅎ'
'야 너 간 이유가 여행가려고 간거 아니였어?'
'아 맞네'
그렇다. 돈을 벌려고 온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살아보려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온 것이였는데 잊고 있었다.
그래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오늘의 코스는 퍼스 남부쪽으로 진행되는 만두라-번버리-버셀톤 경로를 준비했다.
만두라에서는 요트 구경을, 번버리에서는 돌고래 구경을, 버셀톤에서는 제티 구경을 하는걸로 계획을 잡았다.
마침 달도 뜨지 않는 날이니 오는 길에 어둡다 싶으면 은하수 구경도 좀 해볼까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454km, 6시간 44분동안 차를 탔다.
1. 만두라
만두라는 워홀러들이 많이 언급하는 도시중 하나여서 가면 뭐가 있으려나 큰 기대를 하고 갔다. 강가의 집들은 개인 요트 정박시설을 가지고 있어서 요트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줄 알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요트 정박시설은 개인 주택 뒷편에 있어 우리가 구경하기 어려웠으며, 그냥 요트가 많다 이상의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거기에 어디에나 있는 웨스턴 스타일의 소도시구나 싶은 느낌만 전달되었기에 점심만 후딱 먹고 번버리로 이동했다.
2. 번버리
번버리는 돌고래들과 같이 수영할 수 있는 해변가가 있다고 다른 친구가 추천해줬다. 찾아보니 돌고래 박물관(Dolphin Discovery Centre)에서 돌고래가 해변에 오면 종을 쳐서 알려준다고. 박물관은 유료이지만 해안까지는 돈을 받지 않기에 스노쿨링도 할겸 운이 좋다면 돌고래도 볼 겸 방문했다.
박물관은 유아용으로 만들어졌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심지어 성인은 입장료가 18불! 혹시나 싶어 돌고래 탐사 일정이 겹치나 확인했는데 대부분 일정이 오전에 있는 것으로 보아하니 오늘은 글렀다 싶다. 한 블로그에서 돌고래가 오전에만 방문한다는 글을 보긴 했었는데, 진짜였나보다. 9시에 출발한 우리로썬 어쩔 수 없다보니 그냥 스노쿨링만 하기로 했다.
그런데 잔잔한 물과 돌고래가 산다는 해변가임에도 불구하고, 해변은 1m만 가도 뿌옇게 되어있어서 물속을 하나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원래 그런 해변인지, 아니면 오늘이 이상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아쉬움을 가득한 채 그냥 수영좀 하고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겼다.
(친구가 어제 산 7불짜리 튜브가 떠내려가서 마음이 아팠다.)
한 시간쯤 바닷가에서 놀다가 씻기 위해 들어왔다. 아까 화장실을 갈 때 보았던 화장실 내부의 탈의실과 샤워장을 이용해보았다. 무료인데 따뜻한 물까지 속시원하게 나오다니. 이 나라의 공공복지시설에 다시 한번 놀라는 부분이다.
차에 짐을 놓고 커피를 마셨다. 어제 잠을 잘 못잤기에 혹시나 싶어 카페인을 주기적으로 충전해야했다. 아이스롱블랙과 커피모카를 주문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커피모카가 훨씬 맛있어보였다. 아이스크림을 스쿱으로 크게 떨어뜨려주었는데 비쥬얼이...크...
3. 버셀톤
버셀톤으로 가는데는 40분정도가 걸렸다. 번버리까지는 왕복 4차선 도로였지만 번버리에서 버셀톤으로 가는 길은 왕복 2차선 도로. 돌아올 때의 길이 살짝 걱정되었다.
버셀톤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온 바다열차의 모티브인 제티(Jetty, 부두)가 있다. 해안선에서부터 1.8km나 떨어진 곳까지 펼쳐져 있는 목재 부두인 버셀톤 제티. 사진찍을 맛이 있을 듯 싶어 신나게 가보았다.
1.8km나 되는 제티는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기차를 타고 갈 수 도 있다. 저녁에는 무료라고 하는 기차는 걸어가는 것보다는 빠르나 생각보다 저어어어어엉말 느리다. 달리는 정도의 속도? 그래도 우리는 왕복을 모두 걸어보았다. 기차를 기다리는게 답답하기도 했을뿐더러 그냥 이 바람과 제티를 하나하나 보고 싶었다.
낚시도 참 많이한다. 영화의 기찻길처럼 해안선에 딱 붙어있진 않고 약 3m 정도 떠있다보니 무섭진 않으려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친구 단위로, 가족 단위로 놀러와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친구 말에 따르면 제티 끝쪽에서는 가끔 참치!!! 가 낚이기도 한다고.
맨 끝에는 해중전망대가 있다. 다만 우리가 갔을 때는 문을 닫아서 들어가보진 못했다.
생각보다 심심했다고 생각했고 기차가 참 볼품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가 떠 있을때는 몰랐던 모습들이 노을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 시간동안 사진을 찍고, 감탄을 하면서 걸어돌아왔다.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고등학생 세 명이 나에게 사진을 찍자고 한다. 당연히 나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줄 알았는데 나랑 같이 찍고싶다고 이야기한다. 머리속에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일단 OK. 근데 이 녀석들, 나에게 계속 이상한 말을 한다. 자기들이 잡은 생선을 나보고 잡으라는둥, 너가 입에 이 생선을 물고있으면 좋겠다는둥, 이게 너의 오늘 저녁이라는 둥, 자기들 폰이 아니라 내 카메라로 찍고싶다는 둥. 나를 놀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아닌건 아니기에 꽤나 단호하게 그런거면 나는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실랑이 끝에 나와 두 녀석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로, 셋의 사진은 내가 카메라로 찍어준 후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결정이 났다. 사진을 다 찍으니 나보고 이 생선을 가져가라고, 아니면 그냥 바닥에 버릴꺼라고 이야기한다. 나에게 줄 필요 없다니깐 사정없이 바닥에 패대기 치는 못난이 삼형제. 나를 향해 낄낄거리면서 뛰어간다.
한참 고민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호주에는 워낙 동양인들이 많기에 이 친구들이 동양인을 보고 신기해서 사진을 찍자고 하진 않았을테고. 그냥 내가 만만해보였나 싶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16-18세 정도로 보인다고 공장 친구들이 말해주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사진이고 나발이고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릴까 고민했다.
그래도 '선의를 가진 동양의 남자애'로 기억이 남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았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보정을 해서 메일을 보내주었더니 '나도 만나게 되서 반가웠다. 고맙다' 라고 답장이 왔다. 그래 그럼 된거지.
차를 타고 시간을 보니 8시 10분. 친구가 미리 찾아놓은 가게들 대부분이 8시 30분 마감으로 되어있어 어쩌나 싶어 일단 가장 가고싶었던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8시 30분 라스트오더였는지, 우리의 주문을 받아주었다.
세상에나. 내가 먹었던 쌀국수중에 제일 특이했다. 마라탕과 쌀국수 중간즈음에 있는 이 쌀국수는 정말 너무 훌륭했다. 같이 시켰던 팟타이도 매우 흡족. 구글 평점 4.7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면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영어로 구글 평점을 좀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길은 매우 어두워서 처음으로 상향등을 켰다 껐다 하면서 운전을 했다. 가로등이 없는 길들이 있다보니 꽤나 긴장되었지만 덕분에 중간 쉬는 지점에 차를 주차하고 은하수도 구경하고 운 좋게 별똥별도 보았다.
왕복 6시간동안의 운전시간은 나와 친구 사이에 더 많은 대화를 하게 해주었다. 아마 이번 여행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들중 하나는 이 친구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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